“좁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작은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지구 걱정하고 있는 건축가 손정락입니다.”라며 쿠오타 건축사사무소의 손정락 소장은 자신을 소개했다. “건축은 거대한 지구의 에너지 흐름을 이해하고, 그것에 순응하며 이뤄질 때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볕이 좋은 오후 손정락 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2023년 에너지엑스 DY 빌딩이 완공됐다. 이 빌딩에서 주목할 점은 국내 최초로 상업용 건물 ‘제로에너지빌딩(ZEB)’ 1등급을 받는 것을 넘어, 에너지 자립률 121%의 ‘플러스에너지빌딩(PEB)’라는 것이다. 그 시작에는 국내에 없던 최초의 상업용 제로 에너지 빌딩을 짓겠다는 에너지엑스의 굳은 의지가 있었다. 국내에 없던 첫 사례를 의뢰받은 쿠오타 건축사사무소의 손정락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제로에너지 1등급 건물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 당혹스러웠을 것 같아요.
처음에 ‘사옥인데, 근린생활시설을 짓겠다.’라며 찾아오셨어요. 그래서 기대도 안 했죠. 왜냐면 간판으로 도배된 상업 건물에 건축은 없어요. 내부는 공식처럼 중앙 복도 양쪽으로 좁고 길게 임대 공간을 최대한 많이 만들고, 꽉 막힌 계단실이 들어가죠. 전형적인 상가 건물을 원하나 싶었어요. 매력적인 프로젝트는 아니겠다 싶었는데, ‘제로에너지 1등급 빌딩을 만들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솔직히 ‘과연 가능한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1등급이면 태양광 패널을 못 숨기겠다.’ ‘숨길 수 없다면 드러난 패널이 태양광 패널 같지 않게 디자인해야겠다.’ 싶었죠. 저에게도 도전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거 제로 에너지 1등급의 기준이 될 건물을 만들어보자는 욕심이 들었죠.
Q. 태양광 패널은 드러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부담이었겠어요.
사실 건축가들도 태양광 기술이나 기계, 설비는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잘 몰라요. 건축가들이 알아야 하는 소스 중 하나가 재료거든요. 자재가 굉장히 중요해요. 사람도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 따라 느낌이 매우 다르잖아요. 처음에 저도 난감했어요. 태양광하면 떠오르는 파란색 패널로 아름답게 완성할 수 있을까? 흔히 아는 조잡한 태양광 패널은 아무리 거장이 디자인해도 답이 없어요. 그래서 숨기기 급급했죠. 새로운 기술들은 계속 나오는데, 건축 재료로서 태양광 패널에 대한 건축가들의 고민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태양광 패널을 전기의 한 분야라고 치부했죠. DY 빌딩은 초기부터 태양광 입면의 적절한 해결이 관건이었고, 인식부터 달라져야 했어요.
에너지엑스 DY 빌딩 ⓒ김재윤
에너지엑스 DY 빌딩 전경 ⓒ에너지엑스
Q. DY 빌딩에 사용된 패널은 흔히 보던 패널과 달라요.
에너지엑스와 중요한 접점이 거기입니다. 에너지엑스가 가진 박막형 샘플들을 받아봤는데, 너무 훌륭했어요. 매트한 재질에 멀리서 보면 그냥 알루미늄 같아요. 많이 발전했다고 느꼈죠. DY 빌딩은 어반시스 모듈로 거의 모든 곳이 짜여 있습니다. 여기엔 당연히 어려움도 있었어요. 기존 건축은 900, 1200, 1500mm 등의 단위를 써요. 정석 같은 거죠. 그래야 시공하기도 설계하기도 쉽잖아요. 근데 DY 빌딩은 356mm 이래요. 건물의 모듈로 설계한 게 아니라 태양광 패널 모듈을 기준으로 설계했어요.
Q. 태양광 모듈에 맞추다 보니 공간을 설계할 때도 고민이 많으셨겠어요. 가장 중요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게 사실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통합디자인이 필요해요. 건축도 다른 분야처럼 고도화되고 있지만, 건축가의 역할이 점점 모호해진다는 평도 있어요. 미래의 건축가는 발전된 각 분야의 기술이 따로 놀지 않게 퍼즐처럼 딱 맞춰지도록 통합해 사고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로에너지빌딩은 설계 초기 단계부터 여러 컨설턴트와 소통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여러 시뮬레이션이 필요하고, 최대한 오차 없이 예측해야 해요. 미시기후를 파악하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죠. 설계 단계에서 외부 태양광 패널의 종류와 위치, 개수, 당연히 디자인의 상세한 부분까지 결정되어 있어야 하죠. 전기, 통신, 기계도 상세하게 크로스체크를 해야 하고요. 친환경 건물은 건축이기도, 전기이기도, 설비이기도 하거든요. 고생을 정말 많이 했지만, 상쇄될 만큼 결과물이 잘 나와서 기쁩니다. (웃음)
Q. 통합디자인에 이어서, DY 빌딩이 있는 고양시 향동은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예요. 태양과 바람을 이용하는 건물을 짓기 위해 주변 환경도 면밀히 분석하셨다고 들었어요.
처음부터 오랫동안 미시기후를 예민하게 시뮬레이션한 이유는 단순히 태양광 패널을 외부에 붙여 숫자로만 1등급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실제로 빛을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해요. 현재 태양광 패널은 15% 내외 효율을 가지고 있어요. 받아들인 태양 빛 중 15% 정도가 전기로 바뀌는 거죠. 나머지 85%는 유리에서 반사되고, 굴절됩니다. 또 흡수되더라도 저항과 인버터에서 손실이 일어나요. 유리표면의 난반사 등을 이용해 많은 빛을 흡수하더라도 전기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많은 열이 발생합니다. 그 열은 태양광 판넬 후면으로 발산돼요. 후면 온도가 높아지면 30% 이상 효율이 떨어지게 되고요. 효율을 위해 태양광 패널 뒤편의 공기가 계속해서 흐르게 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기류를 만들기 위해 건물 전면에 계단식 테라스와 바람길을 만들었고요. 옥상은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 거대한 베르누이 루프를 만들었죠. 실외기의 바람도 같은 방향으로 배치해 더운 여름에는 펜의 동력을 빌어 건물의 열기가 빠르게 나갈 수 있게 했어요. 태양광 패널의 최고 효율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게 핵심이었죠.
DY 빌딩 계단식 테라스 ⓒ김재윤
DY 빌딩 계단식 테라스 ⓒ김재윤
DY 빌딩 옥상 ⓒ김재윤
Q. 내부 환경에서도 같았나요?
실내도 그 방식을 그대로 이용했어요. 바람의 방향과 기압을 고려해서 실내 환경이 쾌적하게, 전열 교환기 효율을 고려해서 공간의 깊이를 줄였죠. 복도를 외부 공간과 가깝게 두어 자연 환기를 유도하기도 했고요. 1층 계단실의 외벽을 투명하게 만들었어요. 태양열을 받아들여 기압이 높아지고, 옥상의 펜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요. 건물의 높이를 고려해 자연스러운 환기가 될 수 있게 했죠.
DY 빌딩 내부 공간 ⓒ김재윤
DY 빌딩 창 ⓒ김재윤
Q. DY 빌딩을 설계할 당시에는 검은색이 아닌 다른 색을 쓰고 싶으셨다고요.
외관을 봤을 때 태양광 패널을 어디에 쓴 건지 알지 못하길 바랐어요. 전부 태양광 패널이라고 했을 때 뒤통수를 딱 맞은 것 같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죠. 그래서 패널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회색을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실제 회색으로도 효율이 났어요. 109%가 나왔는데, 실제로 건물을 사용할 때도 100%를 넘을 수 있을지 고민됐어요. 나중에 발전효율이 떨어질 것도 고려해서 안전하게 검정으로 갔던 거죠. 사실 저는 검은색 건물을 지어본 적이 없어요. 하얀색을 좋아합니다. (웃음) 건물의 부피감을 보여주고, 태양에 따라 그림자를 보여주기 때문에 밝은색을 선호하는데요. DY 빌딩은 태양이 움직이면서 최대한 그림자가 안 생기게 각도를 잡아 놓아서 사실 밝은 색을 쓸 필요가 없었죠. 오히려 검정을 쓰니 조각처럼 시크하게 완성이 되었습니다. 윤곽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건물을 더 웅장하게 만들어주더군요.
Q. 원래부터 친환경, 신재생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나요?
학생때부터, 풍수나 땅이 가진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에너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에너지는 전기, 연료 같은 뜻이 될 수도 있지만, 기운에 더 가까워요. 지구 상의 에너지는 계속 흐르고, 순환합니다. 그 에너지가 변하면서 잠시 쾌적한 곳에 저희는 머무는 것이에요. 풍수는 땅을 하나의 생명으로 봐요. 서양에서는 가이아 이론이라는 게 있죠. 저는 물리적 에너지와 땅의 기운은 같다고 생각하며 작업을 하고 있어요. 사무소의 이름 쿠오타도 ‘Quota’ 사명이라는 단어의 앞 자를 바꿔 ‘Kuota’로 지었어요. 제가 건축으로 이뤄야 할 사명이기도 한데, 에너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을 하고자 이름을 정한 거죠. 사실상 지구 온난화는 오늘내일의 일이 아니잖아요. 예견되었던 것들이죠. 저희가 앞으로 만나게 될 지구는 여태껏 저희가 경험하지 못한 형태일 거예요. 저희는 적응하는 수밖에 없죠. 적응의 앞단에 건축이 있는 거죠.
DY 빌딩 옥상 패널 ⓒ김재윤
Q. 들어보니 생태건축과도 맞닿아 있는 거 같네요. 에너지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최소한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들고 싶으셨군요.
생태건축이 더 큰 범주죠. 시대에 따라 생태 건축, 녹색 건축, 친환경 건축 등의 주제로 불렸어요. 뭉뚱그려 표현한 화두였다면 친환경 건축은 이제 실질적으로 에너지 효율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나왔어요. 패시브 건축, 친환경 건축 등으로요. 이걸 어떻게 등급을 나눌 것이냐 하면서 녹색 건축이 나왔죠. 수치화하고 등급을 나눠 점수를 매기기 위한 거지 결국 같은 이야기예요.
Q. DY 빌딩이 친환경 건축의 기준이 되길 바랐다고 하셨어요. 앞으로 이런 제로에너지 빌딩, 친환경 건축이 퍼지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몇 년 전 여름에 전국 전기소비의 피크 시간대가 예전과 달리 오후 5시로 늦춰지는 일이 벌어졌어요. 오후 2~3시 가장 더울 때 원래는 가장 높아야 하잖아요. 그 이유가 그 시간대 태양광 패널도 최대 효율을 냈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굉장히 유의미한 사건이죠. 신재생 에너지 기술은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건축가는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마감재에 관한 연구가 필요해요. 외국에 이미 상용화를 마친 훌륭한 기술들이 나와 있어요. 투명한 태양 전지 유리도 발전할 수 있게 되었고요. 아직 상용화는 안됐지만,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있는 페인트도 나왔어요.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아파트가 전부 발전소가 될 수 있죠. 여러가지 아이디어와 성과가 업계 관계자와 건축주에게 공유될 수 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내일의 건축이 소통과 통합에서 도움이 되리라 믿고요. (웃음)
가야 할 길은 먼데 이제 시간이 없어요. 통합은 여러 기술 간의 시너지로 만들어져요. 또, 준공 이후에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 뒷전으로 밀리기 쉽죠. 이제는 높은 효율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의 통합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규제를 넘어 의도를 만들고, 형태를 넘어 이야기로 남는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